문신(文信) : 우주를 향하여
2022.09.01 - 2023.01.29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0:00 - 18:00 (화-일)/ 21:00 (야간개장 수, 토)
2,000원 (덕수궁 입장료 별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지금까지 너무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덕수궁관의 전시 주제에 맞게 4개의 전시관을 구성해서 항상 점진적으로 전시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문신: 우주를 향하여>도 처음 알게 된 작가와 작품을 새롭게 알아갈 수 있는 너무 좋은 기회였다.
<문신: 우주를 향하여> 전시를 관람했을 때에 내가 가진 전시에 대한 관심도는 조각보다는 회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전시회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럴 때, 전시에 대한 재미를 더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도슨트와 오디오 가이드라 생각한다. 도슨트가 오디오 가이드보다는 훨씬 생생한 현장감을 주지만 시간도 맞춰서 가야 하고 많은 사람들과 몰려다니면서 들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오디오 가이드를 택했다.
전시회는 작가 문신의 초기 작품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전시관엔 후기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시간대별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신: 우주를 향하여>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아보지 않고 그냥 전시회 이름과 홍보 이미지만 보았을 때는 조각 작품으로만 구성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초기 회화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건희 특별전에서 봤던 작품들도 많아서 흥미로웠다.
오디오 가이드에 따르면 일본 유학 시절 그렸다는 이 자화상은 21살 때 그린 작품으로 일본 유학 시절 중 남아있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한다. 강렬한 눈빛을 가진 작가와 눈을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 특징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인물 뒤의 커튼이 바람에 날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든다.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바다와 해가 뜨는 하늘의 표현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놀라웠던 점은 작가가 액자를 조각해서 제작했다는 점이다. 설명을 읽기 전에 그림만 보면서 액자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조각했다고 하여 놀라웠다. 게다가 캠퍼스도 수평선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제작했다고 한다. 캔버스부터 액자까지, 작가 문신이 이 하나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애정 있게 작업했다는 점을 느꼈다.
문신이 만든 액자는 <아침바다> 이외에도 위의 <고기잡이>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캔버스 안의 인물들이 액자로 나와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대 로마의 제단이나 신전에 새겨진 조각들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조각이 회화보다 양감을 더 잘 보여줌으로써 조각을 통해 동적인 느낌과 활력을 더욱 강하게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이건희 특별전에서 봤던 <닭장>을 여기서 다시 보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한여름의 파란 하늘과 그 아래의 닭장 그리고 그 앞의 남자를 통해 안 그래도 더운 여름날 닭들이 빽빽이 밀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더욱 답답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오디오가이드의 설명과 같이 이 작품의 제작 시기인 1950년인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의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로 전시관 조명이 작품에 비친 것처럼 찍혀서 정말 한 여름의 태양이 쨍쨍 내려쬐는 모습을 더욱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니면 전시관의 조명을 일부로 이렇게 설치해 둔 걸까?
<아침 바다>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작품도 있었다. 이 작품에서는 앞선 <아침 바다>보다 추상화된 표현으로 작품이 제작되었다고 느꼈다. 앞의 <아침 바다>는 정적인 조용한 아침의 시작을 보여주고, 위의 <아침 바다>에서는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활기찬 아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점점 작품의 대상을 단순하게 표현하면서 전반적으로 작품들이 추상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었다. 선으로 표현하면서 대상을 표현하다 보니 세잔의 작품에서 받는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60년대 작가가 그린 작품을 보면 이제 대상도 작품의 이름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불분명하다. 오른쪽의 <달표면>이라는 작품도 왼쪽의 무제처럼 이름이 붙었다면 특정한 대상을 표현한 그림인 지 알 수 없었을 것 같다. 이름이 무제일 때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은 마치 소설을 읽는 느낌과 비슷하다. 표현은 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내 머릿속으로만 그려지고 설명도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상상을 많이 하고 많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1961년도에 프랑스에서 머물면서 이후에 제작된 작품들은 이 시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고성을 수리하는 일을 하면서 자재들의 형태와 특징에 집중하게 되고, 이러한 추상적 느낌을 위와 같은 회화 작품에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 작품들이 한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들어가자마자 놀랐던 점은 정말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도록 조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위의 문구와 같이 관람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팻말도 전시관 앞 입구에 배치되어 있었다.
'구'로 이루어진 많은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구'는 모든 방향으로 동글동글해서 강렬한 느낌을 주기 어려운 도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구를 1/2, 1/4 하면서 이 하나하나를 반복적으로 배치하면서 색다른 매력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조각의 재료인 나무로 구를 배치하여 조각을 하니 한편으론 불교적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작품보다 더 집중해서 보게 되는 스케치들도 같이 전시되어 있었다. 구가 연속적으로 배치된 모습을 보면서 고등학교 모의고사에 나오는 배점이 높은 문제가 생각났다. 기하학적 도형의 그림을 제시하면서 수치를 구하는 이 문제를 보면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저 어떻게 문제를 빨리 풀 수 있는 지만 생각했다. 문신의 이러한 스케치를 보면서 수학 문제가 생각이 난 걸 보니 이번 전시가 어느 한편으론 수학과 미술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양한 재료로 제작된 문신의 개미들을 볼 수 있었다. 왼쪽 나무로 된 조각이 가장 처음 만들어진 개미인데, 처음에는 작품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프랑스 관람객이 이 작품이 개미를 닮았다고 말한 이후 개미의 특성을 알게 된 작가 문신이 이후 작품의 이름을 개미라고 붙였다고 한다.
조각 작품을 보면 대칭적인 듯 은근히 대칭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작가 문신은 대칭이면서 비대칭이 공존하는 모습이 우주의 법칙이라 생각하고 이러한 자연의 모습을 조각에서 표현하고 있다.
이 전시를 보면서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내가 이미 작가 문신의 조각들을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가 문신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품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조각을 만들 때 이를 고려하여 야외에서 오래 유지되는 청동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얼굴이 비추는 스테인리스를 이용하여 조각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그중 하나가 올림픽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올림필 1988>이다. 정말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지나쳐왔는데, 이번 전시 이후 일상생활에서도 작품,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 상태로 길을 걸어 다니고 있다. 이후 종로의 어느 빌딩 앞의 조각이 너무 문신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자세히 봤더니, 정말 작가 문신의 조각이어서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각에 대한 흥미를 키우고 새로운 한국 작가도 알게 되어서 역시 국현미 덕수궁 전시는 무조건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시를 다 관람한 후에 <우주를 조각하다 문신의 예술 세계>라는 책을 판매하길래,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책도 구매했다. 그의 조각이 환경적이라는 점을 한 번 더 설명하면서 대칭적이면서 비대칭을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인지 독일의 작곡가가 만든 교향곡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귀화 요청까지 받았던 작가를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나중에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에 가기 전에 책을 한 번 더 읽고 작가 문신과 그의 작품을 더 흥미롭게 관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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