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후기] 석파정 서울 미술관: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2022.04.08 - 2022.11.13
석파정 서울미술관
전시는 끝났지만, 뒤늦게나마 올려보는 서울미술관 전시 후기
솔직히, 처음에 전시 구성이랑 작품을 모른 채 이름만 봤을 땐 전혀 끌리지 않았다..
'두려움일까 사랑일까'라는 전시 제목이 직관적으로 어떤 작품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로맨틱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 전시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홈페이지나 후기와 같은 자세한 정보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 전시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주제이고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에 후회했다. 역시 외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부암동은 가기가 쉽지 않아 바로 전시회 보러가기가 쉽지 않아 항상 하루를 잡아두고 가는 편인데, 연차 내고 환기미술관 다녀온 이후로 이번엔 다른 전시회에서 다른 작품을 보러 가게 되었다.
첫 작품으로 <범과 모란>을 보았는데, 보자마자 한국적이란 생각부터 들었다. 호랑이가 민화에서 본 형태로 그려져 있고 모란의 빨간색과 파란색에서 단청이 연상된다. 처음엔 이 작품에 호랑이가 두 마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오디오 설명을 들으면서 세 마리라는 걸 듣고 숨은 그림 찾기처럼 나머지 한 마리를 찾았다.
원래는 병풍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병풍으로 기능했을 때 그 집과 방의 느낌을 상상해보았다. <범과 모란>이 병풍으로 있는 방에 들어가면 모든 액운이 이 그림의 강렬함으로 인해 쫓겨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팅을 위해 이 그림을 새해에 보았으니, 좋은 일들만 생겼으면 좋겠다!
흥미로웠던 작품 중 하나는 <예수의 생애>다. 이전에 마이아트뮤지엄의 마르크 샤갈 전시에서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작품을 보았을 때는 작품 주제나 이야기보다는 표현 방식이나 규모 및 스타일이 흥미로웠는데,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한국적으로 예수의 생애를 표현한 작품을 처음 보게 되어 더욱 신기했다.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예수의 모습은 친근하게 다가오면서 이 인물이 누구인지 생각하면 어색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얼굴 뒤의 후광이나 손바닥의 못 밖힌 흔적을 보면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이 인물이 예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에서 상징의 역할과 중요성을 이 작품을 통해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 작가 중 가장 친근한 작가인 천경자 화백의 작품도 볼 수 있었다. 미술에 관심이 없던 때에 천경자 화백을 뉴스에서 먼저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이슈를 생각해보면 이 작품의 여인이 더더욱 무기력해 보인다. 작품의 동물들에서도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천경자 화백의 다른 작품들은 서울시립미술관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상설전에서 만날 수 있다. 공간도 천경자 화백의 그림과 동일한 분위기로 되어있어 그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공간은 이대원 화백의 사과나무와 배꽃이 전시된 곳이었다. 위의 작품들과 함께 '동구밭 과수원 길~' 노래가 나오는데 이 공간에 있으면 있을수록 작품과 노래에서의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분위기를 계속해서 짙어지게 만들었다.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시골 생활이 상상되기도 하고, VR 게임을 하는 것처럼 가상 과수원에 둘러싸인 기분이 들었다.
위와는 전혀 다른 밝은 공간에 단독으로 전시되어 있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가까이서 보면 압도당하는 느낌인데, 멀리서 보면 빠져드는 느낌을 받는다. 이 작품은 밝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지만 역설적으로 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촘촘히 떠 있어서 그 빛으로 남색을 띄는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사실, 김환기 화백 작품까지보고... 지쳤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의 많은 작품이 있을 줄 모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다가 이 전시회가 정말 많은 작품이 있다는 건 보면서 알게 되었다. 오전에 영어학원 갔다가 바로 서울 미술관으로 갔기 때문에 배가 고프기도 하고 너무 하나하나 집중해서 보다 보니까 체력이 금방 떨어지고 기진맥진했다..
<기다림> 작품처럼 처음 알게 된 화백들의 작품이 너무 많았는데, 앞 부분을 집중해서 보느라 전시 중후반은 똑같은 에너지를 쏟으며 보진 못했다.. 이때는 못 본 부분을 다시 보러 나중에 또 와야지 생각했는데,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전시가 끝나버렸다..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 작품은 많이 접했는데, <바람과 함께>는 이번에 처음 만났다. 또한, 박서보, 김창열 화백 등 알고 있던 화백들의 몰랐던 작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한국 미술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중후반은 제대로 못 본게 아쉽지만..ㅠ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미술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도가 좀 높아졌다. 정말 이 전시회 한국미술을 이렇게 대량으로 모아둔 귀한 전시회인 걸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전시 마지막 공간을 나오면 석파정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이 곳도 너무 아름다웠다. 비록 체력이 다 떨어지고 미세먼지가 있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커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